여전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다.
나는 육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양쪽 다리가 팔처럼 가는 데다 사고를 향해 한쪽 손이 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났을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나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피를 멈추기 위해 손을 꽉 쥐고 참았고, 아버지의 손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부부가 같이 나서도 힘들 판에 아버지가 일을 못하니 살림이 쪼들리는 게 당연했다. 엄마 혼자 아둥바둥하며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과수원 일을 마다 하지 않고 죽도록 일했다. 그러나 육 남매를 먹이고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위로 셋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집을 떠나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시골 생활은 다 거기서 거기라 나는 가난을 의식하지 못했고 불행하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없어 공부 또한 뒷전이었다. 성적은 꼴찌에 가까웠다. 방학숙제를 한 번도 해 간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나를 부모님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난독증이 있어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 때문에 공부가 더 싫었던 모양이다.
그랬던 내가 중학교를 마치자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공부는 못해도 고등학교는 꼭 졸업해야 할 것 같았다. 하다못해 농업고등학교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자식 중 하나만 학교에 보내야 한다면 그게 오빠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들 먹고살기 어려운 때여서 모든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면 장남을 지원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한 명이 가문의 대들보 노릇을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여자인 내가 난생처음 차별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집이나 그랬다. 그런 시대였다.
하지만 오빠는 스스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나는 돈이 없어도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서울에서 와이셔츠를 만드는 한성실업에 취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에게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엄마, 그래도 괜찮지?"
"네가 오죽이 잘 알아서 결정했겄냐. 엄마는 너를 믿어. 너는 잘 할거여."
엄마는 가만히 내 등을 두드렸다. 엄마의 그 말, '알아서 잘 결정했으리라 믿는다. 잘할거다'라는 소리를 새로운 결정을 할 때마다 들었다. 엄마의 말은 매번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말리기는 커녕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자식들을 그렇게 믿어줌으로써 기죽지 않게 했다.
떠나기 전날,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으리라. 자식들을 하나씩 떠나보낼때마다 엄마는 울고 싶지 않았을까?나까지 다섯, 그때마다 울었더라면 엄마 맘이 누덕누덕해졌을 것이다.
"금례야. 앞으로 힘들 것이다. 참말로 힘들 거여. 살아보니께 내일이라는 것이 매번 더 힘들더라. 암만 그래도 절대로 기댈 생각 하지 마라. 형제지간에도 내것,네 것이 있다. 너는 너로서 독립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혀. 그래야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어."
엄마는 평생 얼마나 고생만 했으면 내일이 늘 더 힘들다고 말할까.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걱정돼?걱정하지 마."
엄마는 서글프게 웃으며 거친 손으로 내 손등을 매만졌다.
"엄마, 걱정하지 마.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있잖아. 내가 꼭 성공해서 엄마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나는 고생한 엄마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호기롭게 장담했다.
"엄마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내가 돈 많이 벌면 실컷 사 줄게."
어린 딸의 호언장담에 엄마는 그제야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말이다. 계란을 한 소쿠리 삶아 놓고, 복숭아, 그 달달한 물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한 소쿠리 갖다 놓고,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다."
"알았어, 엄마. 한 소쿠리가 뭐야?평생 질리도록 먹게 해줄게."
엄마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옷 보따리 하나만 끌어안은 채 집을 나섰다.
성공을 위해 도전한 서울행이라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믿음에 보답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가족과도 같았던 친구의 죽음에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못다 핀 영숙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아 성공해야 했다.
공장을 그만두고 패션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거의 무일푼으로 일본에 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졸업 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어디에 살든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무작정 패션의 나라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 하는 채로 찾아간 파리에서 악착같이 공부하고 일했다. 돈을 벌어야 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늘이 이런 내 간절한 마음을 알았던 걸까?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하는 일마다 물 흐르듯 술술 풀렸고, 그렇게 노력한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 친구의 제안으로 전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전시 사업은 파리 본사에서 한국 지사까지 확장되며 꾸준히 성장했다. 확신이 있었기에 많은 빚까지 지며 투자했다. 성공을 꿈꾸며 열심히 일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손에 쥐었던 모든 게 모래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죽도록 열심히 살면서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렇다. 내 사업은 그렇게 망했다.
모든 걸 잃었던 그날, 나는 센강 위에 서 있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시절에도,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아니라 10억원 이라는 빚만 남은 그 날에도, 센강은 어느 때처럼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검은색 수면 위로 수만 갈래의 햇빛이 찬란하게 부서졌다.
내 마음도 모른채 유유히 흘러가는 센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큰 상실감과 허탈감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지고 이미 깊은 밤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검은 강물이 어서 들어오라고 나를 부르는 듯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검푸는 강물 속에서 이제 영숙이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례야 이제 그만 됐어.괜찮아, 너는 최선을 다했어. 할 만큼 했고,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았어...'이제는 정말 영숙이 곁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를 쓰고 살아왔던 지난날이 빠르게 스쳐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어두운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켰다. 제대로 건사하지 않아 쇠락한 느낌이 드는 집 안이 불빛 아래 환하게 드러났다. 기다리는 이 없는 쓸쓸한 집,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집이 꼭 내 인생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울이 보였다. 거울을 제대로 보는 게 얼마 만일까? 얼룩진 거울로 예전의 당당하고 활기찼던 모습을 잃어버린 한 여자의 초라한 행색이 보였다. 사업 실패 후, 10킬로나 늘어난 내 몸이 정말 보기도 싫었다.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검은 기운이 거울 속까지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금례야! 아가! 자랑스러운 우리 셋째 딸!"
거울 속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나의 희망'이라고 불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일하러 갈 때도, 일본으로 갈 때도, 프랑스로 갈 때도, 사업에 성공했을 때도, 심지어 실패했을 때도 나는 늘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내가 죽음을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엄마에게 나는 자랑거리이자 희망일 터였다. 그런 엄마를 두고 죽는 것은 엄마와 함께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살아야겠다. 이제부터는 엄마를 위해 살아야겠다."
엄마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그날의 결심이 내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죽음의 목전에서 엄마로 인해 다시 살아보겠다는 생의 의지가 담긴 발걸음을 뗐다. 그러고 보면 매번 나를 살린 건 엄마였다. 내가 원한 것은 돈과 성공이었는데 엄마는 내에게 무엇을 원했을까? 거울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어떻게든 내 딸이 힘 있게 살아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다시 시작했지만 지난번처럼, 또는 그보다 더 성공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인생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늘 엄마의 희망이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나의 희망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낼 것!', 엄마가 내게 바라던 건 정말 단순했지만,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원하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실패 후, 2년 내내 죽어 있던 희망이라는 놈이 가슴속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 그 뒤로도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며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내가 아무리 망했다 한들
다시 일어서서 한 발 내딛는 걸 못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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