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걸쳐 대서양을 횡단했다
2010년 8월, 켈리델리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나는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산가가 되었다. 이렇게 완벽한 순간에 나와 남편은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은 남편의 평생 꿈이던 요트여행 때문이었다. 우리가 1년간 직원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요트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우리를 말렸다. 왜 잘 성장하고 있는 회사를 더 키우려고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남편 제롬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반응 또한 그랬다.
잘 다니던 글로벌 기업을 퇴사하고 함께 사업을 하던 제롬이 어느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켈리, 나는 가족과 대서양을 횡단하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응.나중에 정년퇴직하고 가자. 같이 가면 정말 좋겠다."
그러자 제롬은 정색을 하고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켈리. 내 말 잘 들어. 나는 지금 가고 싶다는 거야."
"미쳤어?" 일주일 내내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게 말이 돼?"
"켈리, 더 나이 들면 힘들어서 못 가. 돛을 손으로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하는데 늙으면 할 수가 없어. 돈 버는 일은 언제라도 할 수 있잖아? 그러니 우선 조사부터 하고 가능성을 전부 검토한 다음에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를 결정하자. 마음을 열고 함께 조사하다 보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요트를 주문하면 완성까지 2년쯤 걸려. 그 사이에 직원들을 훈련시키면 되잖아?"
오랜 꿈이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제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2년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창업5년 만에 오너가 손을 뗀다는 게 가능하단 말ㅇ린가. 아마 죽도 밥도 안 될 터였다.
"Non!"이라고 단호하게 외치려던 순간,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열여섯에 옷 보따리 하나만 들고 서울 와이셔츠 공장으로 떠날 때부터 결혼 전까지 입만 열면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다 도둑이다. 절대로 남자 믿지 마라."
그러던 엄마가 제롬을 보자마자 그랬다.
"제롬 말 잘 들어라. 뭐든지 제롬이 하자는 대로만 해라."
제롬은 지금도 한국말이 서툴지만 결혼 무렵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제롬과 엄마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갈리도 없는데 엄마는 제롬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왜 그런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그냥 무조건 제롬이 하자는 대로 하자고 했다.
사실, 마지막까지 내 결정을 망설이게 했던 것은 딸의 학교 문제였다. 당시 딸 아이는 학교에 입학할 시기였다. 나는 딸이 학교생활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여행을 떠나면 어린 시절의 나처럼 공부를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남편에게 딸아이의 학업 능력을 위해서라도 세계여행은 무리라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엄마의 말대로 나는 제롬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제롬과 함께 각종 세일링 요트 박람회와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세일링 요트를 주문한 뒤, 완성될때까지 요트를 조종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해서는 직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다양한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적용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까지 회사가 잘 돌아가리라는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2년에 걸쳐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나는 바다 위에서 안전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너무 불안했던 나머지 나는 제롬에게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내가 돌아가자고 하면 무조건 돌아가기로, 제롬은 각서를 썼다. 다행히 1년 동안 나쁜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없는데도 회사는 계속해서 성장했다. 사소한 문제들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었고 손해 또한 크지 않았다.
요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더 이상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어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진정한 부는 돈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나와 제롬이 요트여행을 떠나지 않고 전처럼 일주일 내내 일만 했다면, 우리의 재산은 조금 더 불어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 직원과 오너 간의 확고한 신뢰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 전에 많이 걱정했던 딸의 교육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항해를 하지 않는 날은 남편이 프랑스 학교에서 보내준 교재로 딸의 교육을 맡았다. 나는 딸이 한국어를 놀이처럼 재밌게 익힐 수 있도록 매일 읽고 쓰는 일을 가르쳤다. 그결과, 확실히 여행하며 오감으로 익힌 것이 달라서 그런지 딸아이는 풍부한 사고력과 창의력 그리고 탄탄한 어휘력을 갖게 되었다.
2019년, 나와 제롬은 경영자의 자리에서 아예 물러났다. 코로나로 유럽이 셧다운 위기에 처했지만 우리 회사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나 없이도 회사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회사 이사회의 이사로 일하면서 혁신을 위한 새로운 사업 콘셉트와 아이템을 제시하고, 외부에서도 여러개의 회사를 창업하면서 CEO들을 코칭하고 있다. 직접 경영을 할 때에 비해 수십, 수백 배의 시간적 자유를 얻었다. 서른 개가 넘는 회사를 간접 운영하면서, 여유 시간을 내 남편과 아이, 엄마,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대서양 횡단은 새로운 삶의 항로를 개척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평생 돈만 좋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인간으로서 가장 본질 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본질은 동행이며 나눔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나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에 전심을 다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전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하고 있을 시간에 나는 인스타그램이나 온.오프라인 강연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을 주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꼭 필요한 도움을 받기로 한다. 경영자일때 나는 우리 회사와 연관된 6천 명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이었지만, 지금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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